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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에게. 카이, 방학은 잘 보내고 있어? 우리 못 본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어! 너무 슬프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번 방학은 프랭크와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남은 방학에도 너에게 놀러가지 못할 것 같아. 프랭크도 외동이라서 프랭크의 부모님이 날 아주 좋아하셔. 하지만 여자라서 누리는 특권은 오늘이 마지막일거야. 내일 릴리가 오기로 했거든. 릴리는 ...
아빠가 초인종을 눌렀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나는 엄마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검게 칠한 대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느 때와는 달리 아름답게 장식된 검은 장미덤불이 내 목을 옭죄는 것 같았다. “접니다, 형님.” 아빠의 말에 쇳소리를 내며 대문이...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눈을 잃을 줄은 몰랐다. 히로마사는 자신의 오만함을 비웃었다. 그 자조마저 너무 늦었다. 궁의는 잃은 오른눈 뿐만 아니라 왼눈까지 붕대로 가렸다. 왼눈의 움직임 때문에 회복이 늦어질까 우려한 탓이었다. 다친 이후 빛 없는 어둠 속에 갇힌 히로마사는 우울해 하지 않으려 애썼다...
“코하네!” 툇마루에서 불쑥 히로마사가 튀어나왔다. 얕은 잠에 빠져있던 코하네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더운 바람을 일으켰다.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코하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자 히로마사도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너희 집에 가서 저녁 먹으려고 했는데.” “아, 그럼 나중에 같이 가자. 그것보다 어제...
“어이, 정말 이럴 거야?” 히로마사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넘겼다. 푹 젖은 머리카락이 뒤로 묶은 머리에 찰싹 달라붙었다가 주룩 미끄러졌다. 도로 눈앞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몇 번이나 쓸어 넘기고 귀 뒤로 꽂아 넣는 동안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빗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요란해졌다. 히로마사는 터덜터덜 버드나무 아래로 몸을 피했다. 이미 온통 젖었지만 슬슬 따가워지...
이제 오신 분들이 새글도 없는데 왜 후원하세요.... 후원해주신 분들께는 정말 감사하지만 아직 제가 그만큼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나중에 보시던 거 완결나면 그 때 생각해보세요. 옮겨와 주신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감동하고 있으니까요. 더 안 해주셔도 돼요. 벌써 행복했어요. 계속 즐겁고요.
다시 만난 카구라는 이전과 달랐다. 히로마사는 마루에 앉아 화살을 다듬는 척하며 곁눈질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정원 연못을 들여다보는 카구라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모르는 아이 같았다. 어릴 적처럼 웃는 것은 아니어도 작은 미소만 지어줬으면 했는데 그조차 없었다. 혹시나 하고 기다린 지 나흘 째, 히로마사는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매끄럽고 여린 종아리를 쓸어내리자 움푹 팬 발목이 히로마사의 손에 꼭 맞아떨어졌다. 그는 엄지로 힘줄을 문지르며 발등에 입 맞췄다. 붙잡혀있던 발이 움찔했다. 그는 멈추지 않고 흰 발등 아래로 보이는 푸른 핏줄을 따라 입술을 훑어 내렸다. 그 끝에 움츠러든 발가락이 나왔다. 곱은 마디마디에 한 번, 두 번, …다섯 번 입 맞추고 올려다보자 다이텐구가 얼굴을...
깊은 산 속에 요란한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로마사는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가려는 곳이었다. 인적 없는 산은 중턱도 지나지 않아 수풀이 우거졌다. 길도 없는 곳에 억지로 발을 들이밀자 늘어진 덩굴과 가벼운 나뭇가지가 팔과 다리를 잡았다. 히로마사는 등에 진 활과 장검을 고쳐 매고 품 안에서 단도를 꺼냈다. 쐐액 쐑 바람 가르는 소리...
요즘 날씨가 참 좋다. 그래서 너랑 꽃구경 갔을 때가 생각나. 그 때도 날씨 좋았잖아. 지금은 꽃이 다 졌지만 그 때처럼 또 만나고 싶어.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너도 내가 보고 싶어? 너도 나를 보고 싶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 그런데, 편지를 쓴 이유는 숙제 때문이지만, 쓰다보니까 또 만나고 싶어서 그러는데 또 보자! 5월 5일에 도성에서 단오 행사...
코하네는 거울을 들여다봤다. 창백한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식은땀처럼 보였다. 늘 챙겨 다니는 손수건도 놔두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투명한 피부 아래로 겁에 질린 어린이가 엿보였다. 이 얼굴만 안 들키면 되는 자리다. 코하네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려 애쓰다 결국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차라리 친근한 얼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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